한문 문장은 앞서 언급했듯이 오랜 역사 속에서 언어(言語)로서가 아닌 문자(文字)로서 우리와 함께 해왔습니다. 이것은 한문 문장이 커다란 변화없이 고대(古代)부터 근대(近代)까지 문형(文型)을 유지해 오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이는 한문 문장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서 다룬 한자어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문 문장에 대한 독해의 요령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春來(춘래)- 봄이 오다. == 陽春方來(양춘방래)- 따뜻한 봄이 지금 오고 있다.
위의 문장은 역시 우리말 어순과 같은 주조로 되어있습니다. 또한 수식하는 말들이 포함되어 문장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른 예로 "大器晩成(대기만성)"도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로 해석되듯이 앞에서 뒤로 그대로 독해하면 됩니다.
- 孔子聖人也(공자성인야) - 공자는 성인이다.
- 汝言誠是(여언성시) - 너의 말이 진실로 옳다.
我讀書(아독서)- 나는 책을 읽는다.
☞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수레의 책을 읽어야만 한다.
한문 문장 독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목적어 성분이 포함되어 우리말 어순과 다른 형태의 문형을 지니고 있는 구조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할 때 문장의 서술어 성분 글자를 가장 마지막에 해석하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다른 예로 "忠臣不事二君(충신불사이군)-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에서 보듯이 한문 문장의 독해 요령 중의 하나로 문장 속에서 서술어 성분의 글자를 확인하면 문장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독해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문장 속에서 "不"를 보면 그 뒤의 글자가 서술어 성분의 글자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仁者樂山 知者樂水(인자요산 지자요수)-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춘화만발어전정
花發於庭(화발어정)- 꽃이 뜰에 피었다.
☞ 春花滿發於前廷(춘화만발어전정)- 봄 꽃이 앞뜰에 가득 피었다.
역시 두 번째의 목적어 성분이 있는 구조와 독해 순서는 같지만 목적어 성분이 아닌 경우에 해당하는 구조입니다. 편의상 "보어(補語)" 성분으로 표현한 글자들이 올 때는 서술어 성분과 보어 성분의 사이에 어조사 "於(어)"를 삽입해서 목적어 성분과 구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문 문장을 처음 접하는 초학자들에게는 편리한 방법입니다. 결국 어조사 "於(어)"가 문장 속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 앞의 글자가 서술어 성분의 글자가 된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靑出於藍而靑於藍(청출어람이청어람)- 청색은 남색에서 나왔으나 남색보다 푸르다"를 보면 '어조사 於'의 쓰임과 '말이을 而(이)'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노학난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父母之恩高於山(부모지은고어산)- 부모의 은혜는 산보다 높다
▣ 於의 쓰임 - (1)~에,~에서 : 처소, 출발 등의 의미일 때, (2)~보다 : 비교의 의미일 때
☞ 요령: 서술어가 동사일 때는 ~에(~에서), 서술어가 형용사일 때는 ~보다로 해석됨.
▣ 而의 쓰임 - (1) 그리고,그래서(순접), (2) 그러나,그렇지만(역접)의 접속사의 의미로 해석됨.
▣ 之의 쓰임 - (1)~이(가): 서술어 앞에 쓰일 때, (2)~의(~하는): 명사 앞에 쓰일 때, (3)이것(그것): 서술어 뒤에 쓰일 때
☞ 요령: 之자 뒤에 띄어쓰기나 문장이 끝났을 경우는 모두 대명사의 이것(그것)의 뜻으로 해석됨.
공자문예어노자
孔子問禮於老子(공자문예어노자)-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
예외적으로 문장 속에 목적어 성분과 보어 성분의 글자가 모두 표현될 때의 경우입니다. 위치는 서술어 성분 뒤어 바로 목적어 성분이 오고, 그 뒤에 구별하는 어조사 於를 쓰고 보어 성분의 글자를 사용합니다.
•王賜酒於臣(왕사주어신)- 왕이 신하에게 술을 내려주었다.
이상과 같이 일반적인 단순한 한문 문장들의 독해 요령들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이 설명은 전문적인 국역(國譯)의 수준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초학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한문 문장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한문은 기본적인 문형의 이해만 가능하다면 그 이상은 많은 글을 많이 접하면서 저절로 익혀지게 되어있습니다.옛 선인들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이라 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