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傳來)되고 있는 성어(成語)는 우리의 언어생활이나 문자생활 모두에서 필요불가결하게 사용되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잘못 전해지고 사용되는 성어들로 인해 본연의 가치를 잃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고착화되는 현상을 막아 우리의 전통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자.언어의 올바른 보존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통해 성어들의 본 의미와 올바른 사용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 풍비박산, 풍지박산, 풍지박살 - 풍비박산(風飛雹散)
풍비박산은 바람{풍}, 날{비}, 우박{박}, 흩어질{산}. 자의(字義)는 바람이 흩날리고, 우박이 흩어지는 형상을 의미합니다. 곧 사방으로 날아 흩어진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인 활용의 의미로는 '사물이나 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흩어지고 망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언어생활 속에서 발음의 순화로 인해 혹 "풍지박산{이때의 '지'는 한글}"이라고 사용되기도 하지만 본래의 성어 의미대로 '풍비박산'이라고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풍지박살"은 '박살(撲殺:때려 죽이다)'의 의미를 확대하여 '박산(雹散)'의 발음과 의미로 오용(誤用)한 것입니다.
(예) 암행어사 출두로 변사또 생일잔치 자리는 풍비박산되었다.
■ 혈혈단신, 홀홀단신 - 혈혈단신(孑孑單身)
혈혈단신은 외로울{혈}, 홑{단}, 몸{신}의 글자로 '외롭고 외로운 홀 몸'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의미는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으로 혹 고아(孤兒)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홀홀단신"으로 잘못 사용되는 것은 '홀홀'이 물건을 날리는 모양을 의미하는데, 단순하게 '가볍고 혼자'라는 의미로 오용(誤用)되어 '혈혈'처럼 사용된 것입니다.
(예) 한국전쟁 당시에 혈혈단신으로 월남을 했다.
* 참고로 혈(孑)과 주의해야 할 한자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 了(료)마치다. 孑(혈)외롭다. 子(자)아들. 予(여)나. 矛(모)창.}
終了(종료). 孑孑單身(혈혈단신). 父子(부자). 予與汝(여여여;나와너). 矛盾(모순)
■ 야반도주, 야밤도주 - 야반도주(夜半逃走)
'夜半(야반)의 의미는 밤{야}, 반{반}으로 '밤의 반'이라는 한밤중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결국 야반도주는 한밤중에 도주{도망}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밤이라는 뜻의 '夜(야)'자를 혼용해서 '야밤'으로 표현되는 말을 야반도주로 오용(誤用)한 것입니다.
(예) 악덕 사업주가 고의로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를 했다.
■ 성대모사, 성대묘사 - 성대모사(聲帶模寫)
모사(模寫)와 묘사(描寫)의 차이로 인해 잘못 사용되고 있는 성어입니다. 모사(模寫)는 본받을{모}와 베낄{사}로 '본따서 그대로 베끼는 것'이고 묘사(描寫)는 그릴(묘)와 베낄(사)로 '객관적으로 그대로 그리는 것'입니다.
결국 모방(模倣), 모조(模造), 모형(模型) 등에서 '본뜬다'는 의미로 쓰인 '模(모)'를 사용한 '성대모사'가 "타인의 목소리나 어떤 소리를 흉내 내는 일"의 올바른 표현입니다.
'성대묘사(聲帶描寫)'를 성어로 사용했다면 회화나 문학에서 소리 내는 기관{목청}을 그리거나 표현한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 아무개 개그맨은 특히 정치인들의 성대모사가 장기이다.
단순한 몇 가지 예로 살펴보았지만, 성어(成語)가 잘못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자(漢字)는 각각의 글자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의(表意)의 특성을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해 왕성한 조어력(造語力)으로 만들어진 성어들을 한자 본래의 의미로 활용하지 않고 언어생활 속에 그대로 내던져 버린 결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제는 언어(言語)가 아닌 문자(文字)로서의 한자(漢字)의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敎育)과 이론(理論)의 정립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